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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ee no neutral things.

 

W-pI.17.1. This idea is another step in the direction of identifying cause and effect as it really operates in the world. 2 You see no neutral things because you have no neutral thoughts. 3 It is always the thought that comes first, despite the temptation to believe that it is the other way around. 4 This is not the way the world thinks, but you must learn that it is the way you think. 5 If it were not so, perception would have no cause, and would itself be the cause of reality. 6 In view of its highly variable nature, this is hardly likely.


W-pI.17.2. In applying today's idea, say to yourself, with eyes open:

2 I see no neutral things because I have no neutral thoughts.

 

3 Then look about you, resting your glance on each thing you note long enough to say:

 

4 I do not see a neutral ___, because my thoughts about___are not neutral.

 

5 For example, you might say:

 

6 I do not see a neutral wall, because my thoughts about walls are not neutral.

7 I do not see a neutral body, because my thoughts about bodies are not neutral.

 

W-pI.17.3. As usual, it is essential to make no distinctions between what you believe to be animate or inanimate; pleasant or unpleasant. 2 Regardless of what you may believe, you do not see anything that is really alive or really joyous. 3 That is because you are unaware as yet of any thought that is really true, and therefore really happy.

W-pI.17.4. Three or four specific practice periods are recommended, and no less than three are required for maximum benefit, even if you experience resistance. 2 However, if you do, the length of the practice period may be reduced to less than the minute or so that is otherwise recommen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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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 17 은 명백히 Lesson 16 의 연속입니다.

앞에서도 그러했지만 저자는 우리의 생각과 지각(perception)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다시 한 번 우리의 생각과 지각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하지요.

 

지각이란 소위 오감(五感)을 통하여 우리가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ACIM 에서는 see (눈) 을 가장 대표적인 경우로 사용합니다. 따라서 see 라는 단어는 perceive 라는 단어와 동일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분명히 오감을 통하여 저 밖에 있는 세상을 인식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각의 대상과 나의 생각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니, 오히려 우리는 외부의 대상에 따라 우리가 생각하게 된다고 믿습니다. 즉, 외적인 대상이 원인이요 우리의 생각이 결과라고 믿는 것입니다.

 

대학생 시절 E. H. Carr 의 <What is History?>를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Carr 에 의하면 소위 역사적 사실이란 실제로는 역사가에 의한 해석일 뿐입니다. 말하자면 객관적인 사실이란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역사란 강자의 입장이 반영된 왜곡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책을 읽으면서 크게 공감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ACIM 저자의 주장은 그 정도가 Carr 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 ACIM 저자에 의하면 우리가 사실(fact)이라고 믿는 모든 것이 실제로는 우리의 해석, 곧 생각 또는 믿음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지각을 통해 인식하는 모든 대상이 다 사실이라고 믿고 있지요?

 

Projection makes perception.  투사가 지각을 만든다.

 

투사란 우리의 내면(마음)에 있는 것을 외부로 반영시키는 것입니다.

지각은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을 오감을 통하여 인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투사가 지각을 만든다면 결국 우리는 우리가 투사한 것을, 곧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을 반영시킨 것을, 다시 오감을 통하여 인식할 뿐입니다. 그래서 ACIM 저자는 우리는 곧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객관적인 사실로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그렇게 느끼도록 미리 심어놓은 증거들일 뿐입니다. 단지 우리가 이러한 것을 알고 있지 못할 뿐입니다. 망각의 베일을 쳐놓았기 때문입니다.

 

T-3.I.8. The innocence of God is the true state of the mind of His Son. 2 In this state your mind knows God, for God is not symbolic; He is Fact.

 

오로지 신만이 사실(Fact)입니다. 대문자 사실(Fact)과 소문자 사실(fact)을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마음의 평화를 느끼시나요?

혹시 여러가지 일로 마음이 상하시지는 않나요?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

도대체 못마땅한 일들...

여기저기서 터지는 온갖 대형 사건들...

 

우리의 일상이지요?

 

그리고 위에 열거한 것들은 분명히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지요? 나는 분명히 착실하게 정도를 지키며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이 세상이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짜증이 나지요?

 

이러한 생각이 든다면 바로 그 순간, ACIM 의 저자에 의하면, 우리는 에고가 쳐놓은 술수에 말려든 것입니다.

과연 그 누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내면을 깊이 성찰해 볼 때, 다른 사람들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행동으로부터 100%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 몸을 가지고 살면서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잘못도 저지르지 않으면서 살 수 있나요?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부터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시오!" 라고 예수님이 말씀했을 때 모든 이들이 슬금슬금 도망간 성서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요?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 때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같습니다. 같은 신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에고를 따르고 있습니다. 신의 아들이라는 면에서만 하나가 아니고, 에고를 따라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면에서도 우리는 하나입니다. 이 점을 깨닫지 못하는 한 ACIM 저자가 말하는 "깨어남"은 아마도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도대체 그렇다면 희망이 있는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저도 답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모든 것의 원인이 우리의 마음이라면, 이는 한편으로는 엄청난 긍정이 아닌가요? 우리가 마음을 바꾸는데는 아무런 조건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머리가 좋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시험에 합격해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마음을 바꾸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이것이 차라리 훨씬 수월한 것 같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다른 무엇인가를 바꿔야 한다면 --- 제도나 정책, 교육, 기후, 등등 --- 그게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선택을 따르겠습니까? 서로 자신의 길이 옳다고 엄청 싸우겠지요...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 온 것이 아닌가요?

 

 

its highly variable nature,

 

정말로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변덕스럽지요?

어제는 그토록 사랑스럽던 아이들이 오늘은 어찌나 속을 썩히는지...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미웠던 사람인데, 진실을 알고 난 이후 갑자기 그 사람이 이해가 되면서 미워했던 일이 부끄러워진 일도 있었지요?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 알 수 있었던 경험도 있지요?

 

또한 똑같은 경험을 하지만 전혀 다르게 보는 사람들도 많지요?

같은 작품을 놓고 전혀 엇갈린 평가를 하는 전문가들도 많지요?

 

과연 우리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알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남들과 자신의 차이는 오로지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는 데 반해 남들은 같이 모르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요즈음에서야 제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진정한 겸허나 예(禮)는 "나는 진정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수용할 때에야 가능할 것입니다.

 

 

7 I do not see a neutral body, because my thoughts about bodies are not neutral.

 

이 부분도 잘 읽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내면일까요 아니면 외부일까요?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몸 또한 우리의 마음의 외부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몸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ACIM 저자의 뜻을 이해하는 첩경일 것입니다.

 

 

make no distinctions between what you believe to be animate or inanimate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도 아무런 구분을 짓지 말라는 말입니다. 살아있는지 아닌지는 우리의 믿음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식물은 살아있는 생명체이고, 그 아래에 있는 돌이나 흙은 비생명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생명체와 비생명체를 확실하게 구분합니다. 그런데 그러지 말라고 하네요... 생명체이니 아니니 하는 것도 우리의 믿음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T-23.II.19. There is no life outside of Heaven. 하늘을 떠나서는 생명이란 없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살아있나요?

그런데 결국은 모든 인간은 죽고 말지요? 죽음이 불가피하다면 과연 생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생명체라고 믿고 있는 것 중에 죽지 않는 것이 있나요?

그렇다면 전체 시간 중에 "살아있는" 시간은 그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10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수십억 아니 수백억년의 지구 역사와 비교할 때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생명의 의미에 대하여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no less than three are required for maximum benefit, even if you experience resistance.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가 저항을 느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는 저자의 말을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지금까지의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관과는 너무도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으니 그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 3회 정도는 하는게 좋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다만 시간은 좀 단축하는게 좋다고 하네요.

 

마음이 불편하시지요?

도저히 수용하기 어렵지요?

 

그렇더라도 저자의 친절한 안내를 따라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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