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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면 국순당 회장- 후진양성에 힘써야 합니다
 

  
후진양성에 힘서야 합니다!
- 국순당 배상면 회장

■학력
경북대학교 농예학과 졸업

■경력
대구시 동촌소재 기린양조장 경영
포항 대송양조장 경영 (탁주)
전통누룩을 개량한 조효소재 생산연구
무증자효소 제조 특허취득
한국미생물공업연구소 창립(주식회사 배한산업)
전통술제조기술전문지 태양통신 창간
생쌀발효법에 의한 전통술제조특허 취득
배상면주가 취득
배성면주류연구소 소장(전통개량누룩 연구, 생산)국순당, 배상면주가 회장

『프랑스 와인과 러시아의 보드카, 멕시코의 데킬라, 일본의 청주 등은 한 나라를 대표하면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술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들처럼 세계적으로 내세울 만한 전통주가 있을까? 우리나라 전통주를 살리고 알리는데 일생을 바친 이가 있다. 바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은 맛보았을 ‘백세주’‘산사춘’을 만든 주인공이자, 다양한 종류의 전통주를 개발하고, 그 전통을 이어나가는데 일생을 바친 술의 장인(匠人), 국순당의 배상면(裵商冕·84) 회장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술 가운데 맥주 빼고 다 만들어 봤습니다” 65년간 술독을 벗 삼아 소주, 막걸리에서 양주, 코냑, 샴페인까지 온갖 술을 빚고, 전통술을 재현해 온 배상면 회장을 서울시 양재동의 배상면주류연구소에서 만나봤다. 배 회장은 손가락이 굵고 큼지막한 손을 내밀며 반갑게 맞았다』

「배상면 회장은 …」
“내 손이 뭐 볼끼 있나? 자 한 번 보시오”
손을 한 번 만져보고 싶다는 기자에게 선뜻 큼지막한 손을 내 미는 배상면 회장. 오래도록 기업을 운영해 온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허허허. 고생은 많이 했지요. 말 못할 고통도 참 많았습니다. 실패도 겪고 위기도 이겨냈습니다. 그거 다 인내하며 오늘까지 왔습니다” 배 회장은 1924년 대구에서 태어나 1950년 경북대학교 농예화학과를 졸업했다. 술 연구가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았던 대학 시절을 마치고 6·25 전쟁 중 통역장교로 복무했던 배 회장은 1952년 기린주조장을 경영하며 직접 양조 사업에 뛰어들었다. 기린소주를 개발, 대성공을 거뒀으나 무모하게 브랜디 사업에 뛰어들어 큰 좌절감을 맛보았다. 이후 숱한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세계에 자랑스레 내놓을 우리 전통주 개발에 몰두한 배 회장은 1982년 생쌀 발효법에 의한 전통술 제조 특허를 취득하고 이듬해 국순당의 전신인 배한산업을 창립했다. ‘누룩장이’ ‘누룩박사’ ‘누룩의 대가’로 불리워지는 배 회장. 우리나라 소주의 80%를 지금도 여전히 배 회장이 직접 개발한 누룩으로 만들고 있다. 술에 빠져 지낼 만큼 평생 술 연구와 양조로 살아온 배 회장은 현재 (주)국순당, (주)배상면주가 회장, (주)배상면주류연구소 소장으로 지내면서 우리 전통주가 진정한 세계의 술이 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하고 있는 영원한 현역 술의 장인(匠人)이다.

「無에서 출발 … 실험과 도전의 세월」
어릴 때부터 허약한 편이었던 체질의 배 회장은 중학교 3수까지 했지만 실패하고, 일본에 가서 무시험 입학의 가시밭길을 택했다. 모처럼 공부에 취미를 붙이고, 공부하는 방법 또한 깨우쳐 열심히 하게 됐으나, 결핵성 늑막염으로 목표했던 고등학교 시험 한 번 제대로 쳐보지도 못하고 해방과 더불어 귀국했다. 중학교 졸업에서 그친 배 회장이 다시 공부를 시작한 것은 형님 때문이었다. 이미 학업을 포기하고 실업 계통으로 나아가 입신하려는 생각이었던 그에게 형님은 배 회장의 생각은 아랑곳하지 않고 대구농업전문학교 농예화학과에 입학원서를 넣었다. 막상 대구농전에 입학하기는 했으나, 동맹 휴학이 다반사인 학교 분위기에 실망스러웠다. 그러나 뜻을 같이 했던 손태화(전 경북대 교수), 전병화(전 고려대 교수), 김원길 등과 '미생물반’을 조직하여 학구적인 서클 활동에만 전념하는 등 오로지 공부만 했다. 배 회장 평생의 연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음가짐도 이 시절 형성됐다. 배 회장은 대학교 3학년 때 당시 세무서장이었던 사돈의 소개로 대구의 청주 양조장에서 실습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 곳은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 소유의 조선 양조장이었다. 제조 기술자가 아주 적었던 까닭에 귀하신 몸 대접을 받았고, 각 청주 양조장들은 기술 보안에 몹시 신경을 쓰고 있었다. 배 회장이 찾아간 조선양조장 역시 자기 공장의 기술이 빠져나갈까 싶어 그런지 냉랭한 태도였다. 배 회장은 그런 거북한 분위기 속에서도 모처럼 얻은 소중한 실습 기회를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처신을 조심하면서도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던 중 술덧을 젓다가 균형을 잃고 술통 속에 빠진 적도 있었다. 학교 강의가 끝나면 부리나케 양조장으로 달려가 술덧의 발효 과정을 지켜봤다. 그러나 배 회장에게는 각 양조 과정의 전문 용어가 너무 생소하고 어려웠다. 그때 마침 야근하다가 눈에 띈 서류함을 열어 봤는데, 거기에는 일제시대 일본사람들의 청주 제조 기록이 많이 있었다. ‘책이 이렇게 많으니 한 장 찢어도 되겠다’ 싶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장을 재빨리 빼내어 호주머니에 넣고 공장장실을 빠져나왔다. 다음날부터 새벽같이 양조장으로 달려간 배 회장은 공장 근로자가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동참하여 일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배 회장은 모든 작업에 참여하면서 각 제조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적인 지식을 쌓고 나서는 일본 술 관련 문헌을 보는 것도 훨씬 흥미가 있고 이해도 빨랐다.

「내 필생의 역작, 백세주 탄생」
1991년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술을 만들어보자는 배 회장과 큰 아들인 배중호(現 국순당 대표이사)사장의 노력아래 고려말 유행하던 백하주를 담글 때 사용하던 ‘생쌀 발효법’을 복원해 ‘건강에 좋은 술’ 백세주를 탄생시켜 주류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후 한국 주류시장에서 사장(死藏)돼있던 전통주 시장을 부활시켜 맥주, 소주로 대별되던 대중주 시장에 전통주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백세주는 찹쌀과 누룩에 감초, 인삼, 오미자, 구기자 등 10여 가지 한약재를 넣어 발효시킨, 그야말로 약주의 본질이자 명주라고 자부합니다』


배 회장이 개발한 백세주는 처음 출시됐을 때에는 술을 통하는 루트를 통할 수 없었기에 판매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었다. 그러다 1993년, 약주에 한해 판매 구역 해제 조치가 내려진 후 넓은 시장을 무대로 활발한 판매 활동을 전개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지난 1994년 24억원 매출이 불과 10년만에 1천100억원대로 성장했다. 백세주는 현재 미국과 일본, 중국, 캐나다, 호주 등 세계 25개국에 수출 중이다. 또 지난 2월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식품박람회에서, 국순당의 대표작인 ‘강장백세주’와 ‘백세주’가 각각 금상과 은상을 수상했다. 백세주가 와인이나 위스키 등 유명 주류와 비교해 충분히 경쟁력 있다는 것을 입증하게 된 것이다.
“모든 일에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힘이지요. 정성이 넘치고 진실한 생각이 꽉 차 있는 행동은 반드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뜻하지 않은 좋은 결과를 창출합니다”

「가업으로 이어진 필생의 사업」
일찍이 배 회장은 자식들에게 사업을 물려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십이 넘으면서, 자식들에게 가업을 잇지 않도록 하는 게 과연 옳은 생각인지 아닌지를 심각히 검토하게 되었다. “수십 년간 피땀 흘려 쌓은 경험을 후세에 인계하지 않으면, 내가 죽은 뒤에 맥이 끊어지고 말 터였소. 자식이 아니면 누가 이어 받으려 하겠는가?” 배 회장은 그렇게 생각을 바꾸게 된 동기의 하나가,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과 독립선언문 작성자인 제퍼슨이 주조업 가문이었고, 케네디 대통령도 주조업 집안 출신임을 알게 되면서였다고 한다. 그래서 배 회장은 스물아홉 살 때부터 종사하여 평생 관여한 직업이 하찮은 것이 아니며, 또한 나라 경제에 이바지하는 가문으로 자존심과 긍지를 일깨워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 즈음 특히 전통주를 연구하려고 관련 문헌을 찾아보니, 술 이름은 수없이 많으나 구체적인 제조 방법은 하나도 없다시피 했고, 기껏해야 용량 단위에서 ‘병, 사발, 지게, 말’ 등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왜 후세들이 알아볼 수 있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엇보다 자식들에게 자기 직업을 넘겨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이 갔다는 배 회장. 큰 아들의 대학 전공으로 생화학을 권했던 것은 기초 과학 부문을 착실히 공부해 놓으면 양조 기술 개발의 기본을 갖추는 셈이고, 나중에 혹시 사업을 이어받더라도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큰 아들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연구소장으로서 적극 관여함에 따라 배 회장은 필생의 사업을 자식들에게 서서히 물려줄 준비를 했다. “경쟁없는 기업은 발전이 없다. 선의의 경쟁으로 부디 업계의 큰 기둥들이 되기를 바란다” 배 회장의 둘째 아들인 배영호(現 배상면주가 대표이사) 사장이 배상면주가를 설립하여 독립했을 때 배 회장이 두 아들 앞에서 했던 당부의 내용이다. 물론 현재까지는 큰 아들이 운영하는 국순당이 전국 약주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멀찍이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둘째 아들이 운영하는 배상면주가 또한 국순당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배 회장의 막내 딸 배혜정(現 배혜정누룩도가 대표이사) 사장도 기능성 탁주인 ‘부자’를 내 놓아 형제간 전통 술 경쟁에 가속도가 붙었다. 세 회사는 한 뿌리에서 나온 동반자이지만 경쟁자로서 더 나은 약주 개발을 위해, 그리고 시장 점유를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나의 경영철학」
“이 세상에 공짜는 없소. 무엇이든 대강하면 안되고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월급은 빤히 정해져 있는데 남보다 더 열심히, 부여받은 업무 외의 일까지 찾아서 한다는 것이 어리석고 손해보는 일처럼 생각되기 쉽지요. 하지만 그 보답은 어떠한 형태로든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이치를 절실히 깨닫게 될꺼요. 그래서 무슨 일이든 넘쳐흐르는 열성을 가지고 혼신의 힘을 쏟아 부어서 전력투구해야 한다는 것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생각하고 또 실천하게 된 것이오.”
주는 것만큼 얻을 수 있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봉사를 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말하는 배 회장은 이 같은 확신으로 사업을 했다고 말했다.

「후학 양성 … 대학에 양조학과 신설」
우리나라 전통 술, 민족주의 대를 잇는 후계자가 있어야겠다는 것은 배 회장의 평소 신념이다. 전통주 제조 비법을 아는 명장들이 세월이 갈수록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전통주의 대를 잇는 후계자가 없다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배 회장은 어느 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대학에 양조학과를 신설하는 건 어떨까? 그래, 좋아. 내가 경북대 출신이니까 경북대 총장에게 제안을 해 보자’ 모든 일은 생각에서부터 이루어진다. 배 회장은 생각만 품고 있고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전통주 제조 방법을 보급하고 계승하겠다는 뜻을 펼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친김에 경북대 총장에게 전화를 걸어 “유럽이나 일본 같은 데 가 보면 술에 관련된 학과가 버젓이 있고, 또 대를 이어 술 만드는 일에 종사하며 가업을 지켜가는 풍토가 있지 않습니까? 그와 같은 풍토를 만들기 위해 대학 내에 양조학과를 신설합시다” 라며 “자금은 내가 지원하겠소. 국순당 주식을 팔면 교수 월급과 학과 운영비, 장학금 정도는 나올 것이오. 내 이제 나이도 들었고, 언제까지 현장을 지킬는지 모르지 않소? 이제는 후진 양성을 위해 서둘러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라고 말했다. 경북대 총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2002년 9월, 배 회장의 제안에 의해 경북대 대학원에는 발효생물공학과라는 새로운 전공 학과가 출범했다. 배 회장은 이 일을 위해 국순당 주식을 기꺼이 희사했다. 이와 더불어, 배 회장의 아내 한상은씨도 2004년 7월 모교인 숙명여자대학교에 학교 발전기금 20억 원을 현금으로 기부했고, 지금까지도 학교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배 회장은 또 전통주 제조 인력 양성을 위해 경북대와 함께 3억 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 ‘주류 제조 기술인 양성원’을 설립했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해마다 여러 명씩, 이론과 실기를 겸비한 장학생들이 선배 세대의 뒤를 이어 자랑스런 술의 명장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대학 총장과 교수들이 바뀌면서 관심을 가지지 않고 협력도 하지 않았다. 학교측에서는 ‘대학이 실험하는 학교냐? 대학에 꼭 있어야 할 과목이 아니다. 필요 없다’ 라며 그동안 운영해 온 과목을 모두 없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소원 ‘술 저장 문화’」
“내가 지금 술을 자꾸 개발하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제도상에 규제가 너무 많아요. 새로운 좋은 술을 수출하려면 저장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저장을 못해요. 술만 만들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저장을 해야 좋은 술이 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렇게 하기가 힘듭니다” 경영 일선에서 벗어나서 매일같이 술 연구 개발에만 몰두하고 있는 배 회장에겐 소원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외국처럼 술 저장 문화가 꼭 필요합니다” 1~2년이 아닌 최소한 3년 동안만 술을 저장해도 술맛이 달라진다. 배 회장은 “외국의 술은 20~30년씩 저장하는데 우리나라는 규제가 심해 술 저장을 오래 할수록 돈이 많이 들어갑니다”고 말했다.
“마! 안될 때 안되더라도, 내가 앞으로 잘하면 10년 산다카니까.. 10년 동안은 매 달 술을 만들어서 안팔라고 하오. 안파는 전제하에서 술 저장만 할 수 있게 조치를 내려달라고 마지막으로 건의서 낼라고 준비중이오. 못 먹는 감 찔러보는 셈이지”
시대가 바뀌어서 저장문화를 함으로 해서 우리도 외국에 내놓을 수 있는 술이 생겨야 한다. 그 것이 배 회장의 소원이다. 청주의 나라로 알려진 일본, 빼갈의 나라로 알려진 중국. 그들은 모두 자국의 술 발전을 위해 엄청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단지 우리 술이기에 국가적인 막연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문화로서, 향후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우리 술의 미래에 대해 국가적 차원의 보다 거시적인 지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Innovation 2007」
국순당은 단기적인 이익 추구보다는, 어려운 경영 환경을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는 해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process, 조직, 문화, 투자 혁신 등 4가지 혁신목표를 설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50년 이상의 우수한 주류제조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는 국순당은 변화하는 소비자의 숨은 Needs를 발빠르게 찾아내고 이에 맞는 시장개척 및 신제품 출시로 지속적인 성장을 모색해 나갈 계획이다. 또한 강원도 정선군과 전라북도 고창군 등의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국순당의 주류제조 기술 지원 및 마케팅 자문을 수행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 및 상호 윈·윈(win-win)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백세주마을’ 프랜차이즈화(化)」
지난 5년 여 간에 걸쳐 직영점으로 운영해 왔던 전문주점 ‘백세주마을’ 을 올해부터 프랜차이즈 가맹점 사업으로 확장 운영할 계획이다. 8월 오픈 예정인 1호점을 필두로 전국 주요 지역의 전략적 진출로 프랜차이즈 매출 및 수익을 신규 창출 할 뿐만 아니라 제품에 대한 수요기반을 탄탄히 다지는 기회로 삼고 있다. 국순당의 작년 총매출은 1,065억 원이고,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매출목표를 설정했으며 당분간은 백세주 매출 회복 및 신제품 개발, 프랜차이즈 사업에만 집중할 방침이다.

「도전·열정·창의」
국순당은 기업의 특성상 영업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으며 주류업계 TOP에 진입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기존 틀에 대한 도전과 실패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남다른 행동과 시도를 위한 창의와 열정을 가진 인재를 원한다. 홈페이지를 통해 수시채용 모집을 하고 있으며 1차 서류전형 통과자에 한해 2차 실무자면접 및 인성검사 3차 최종면접을 통해 직원을 채용하고 있다. 영어PT, 토론, 과제PT 등 직군별 실무면접을 실시하기도 한다.

「신입사원 육성 … 경력개발 지원」
회사의 미션과 방향성에 대한 이해와 현업에 대한 이해, 신입사원의 기본 소양을 육성하는 과정 등 총 3개 과정으로 운영되어진다. 첫째 회사의 미션은, 조직원으로서 회사에서 지향하는 비전과 미션을 공유, 체질화하기 위해 배중호 사장이 직접 신입사원에게 강의를 진행한다. 이는 조직의 비전과 미션에 대한 회사차원의 강한 의지와 명확한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강원도 횡성군에 있는 청태산 자연휴양림의 ‘국순당의 숲’에서 자연보호 활동을 의무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둘째 현업에 대한 이해 부분이다. 각 부서의 업무에 대한 개략적인 업무영역과 프로세스 등을 교육받고 영업현장과 생산현장의 경우 반드시 체험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회사의 전체적인 업무프로세스를 반드시 파악하고 이해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기본 소양과정으로는 창의력 향상 과정, 비즈니스 매너와 직장예절, 임원진과의 대화를 통한 사회인으로서의 자세와 품성 등을 교육한다. 또한 멘토링 제도를 운영함으로써 신입사원이 겪을 수 있는 조직생활의 어려움을 지원하고 인간적인 관계 강화를 통해 장기근속과 현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직원들이 현재 자신의 업무 외에도 다양한 업무영역에서 새로운 경험과 도전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해 매년 직무이동 신청을 받고 있다. 이는 다양한 업무영역에서 자신의 경력과 능력을 시험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지고 있다. 직무이동을 한 직원은 사외교육이나 사이버교육 등 이동직무에 대한 전문교육을 실시하여 조기에 적응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도 현업에서의 경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사외교육 등을 실시한다.

「배 회장의 근황」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길이 생깁니다”배 회장의 말이다. 술 연구를 멈추지 않고 평생을 전통주와 누룩빚기 외길을 달려온 철저한 장인. 팔순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또렷한 기억력과 쩌렁쩌렁한 육성을 자랑하는 배 회장은 집 주변을 돌며 산책을 하면서 건강관리를 한다. 그리고 70년이 넘도록 취미생활로 해 온 서예를 하며 몸과 마음을 다잡는다. 친한 이들에게 직접 쓴 붓글씨 족자를 선물하기도 한다. 배 회장은 술 제조에 대한 내용을 기록한 우곡통신을 발행한다. 전문가들이 없어서 배 회장이 직접 내용을 꼼꼼히 작성, 출판까지 해서 일반인들에게 나눠준다. “무엇이든지 목적을 위해서 끝끝내 물고 늘어져야 합니다. 중도에 포기하면 절대로 안되지요. 절대로 포기하면 안됩니다”
3시간의 긴 인터뷰를 끝낸 배 회장은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그의 연구실로 안내해 요즘 연구 개발하는 여러 종류의 술과 연구원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바로 1층에 내려가 전통주 갤러리를 둘러봤다. 엘리베이터 앞까지 친히 와서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배웅해 주는 배상면 회장. 그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긴 여운으로 남아 가슴 속을 맴돌았다.

『누구라도 평생을 한 분야에 몰두한다면 성공하지 못할 바 없소. 그러나 나는 내 꿈을 아직 이루지 못했단 말이오. 세계인들이 한국 하면 떠오르는 명주를 아직 개발하지 못했고, 그것을 보기 전에는 나의 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전통주를 만들기 위해 나는 생의 마침표를 찍는 그 날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하고, 또 연구할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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