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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군 패션디렉터 - 아시아의 이태리 한국,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문군이 이뤄낼 것"
 

  
패션디렉터 ‘문군(MoonGoon)’

아시아의 이태리 한국,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문군이 이뤄낼 것”

패션디자이너 ‘문군’은 지난 97년 동대문 상가의 패션몰로 시작해 98년 ‘문군네(현재 문군의 전신)’를 창업하고 브랜드 라인과 매장을 늘려나가면서 우리나라 여성들의 1/3은 문군이 디자인한 옷을 가지고 있다(카피본을 포함해)고 할 만큼 큰 주목을 받으며 떠오른 패션계 스타다.
본명은 문인석. ‘문군’은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부르던 아명이자, 곧 그의 대표적인 브랜드가 됐다. 2002년, 일본 NHK 스페셜 프로그램 ‘한국 패션계에서 주목 받는 젊은이’로 방송을 타기도 했고, 패션계에 발을 내딛은지 6년 만에 청강문화산업대학의 겸임교수직을 맡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한국에서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하고 주 사업지를 중국으로 이동, 새 둥지를 틀었다. 중국에서 ‘문군’이란 브랜드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운 지 6년. 그는 이제 중국을 교두보로 세계 패션 시장에서의 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준비하는 패션 디렉터가 되어 온라인 패션시장으로의 영역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한국의 생산 여건이 굉장히 어렵고 매장 운영이 힘들어지면서 2001년 말 중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한국에서부터 거래하던 홍콩의 바이어였던 친구가 중국의 생산 기반을 잘 갖추고 있었던 덕에 그 친구의 도움을 받아가며 중국에서 생산기반을 마련하고 매장을 오픈 해 나갔습니다. 초창기에는 사업을 크게 확장시켜 많을 때는 북경, 하얼빈 등 중국 전역에 걸쳐 약 20여 개에 달하는 매장이 운영되기도 했었습니다”
그만큼 중국에서도 브랜드 ‘문군’은 큰 이슈가 되었고, 20~30대 젊은이들에게 ‘입고 싶은’ 옷으로 크게 각광받았다. 여기 저기 대리점 오픈에 대한 문의는 쇄도했다. 하지만 문군은 이후 사업의 무리한 확장을 자제하고 대리점 관리의 문제와 사업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일종의 구조조정 단계에 돌입해, 현재는 약 5개의 매장만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중국에서도 크게 먹히는(?) 스타일로 인정받은 문군의 브랜드는 크게 ‘섹시함과 파워’라는 2가지로 소비자에게 어필되고 있다. 그리고 이 섹시함과 파워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문군은 초생달 모양의 넝쿨모양으로 이뤄진 ‘문군 심볼’을 개발해냈다.

프라다, 루이비통 만큼 세계 중심이 될
‘문군심볼’을 만들다
“프라다, 루이비통, 구찌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면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루이비통을 떠올리면, 누구나 연상하는 문양이 있죠. 또 버버리를 생각해도 누구나 버버리의 체크무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이렇듯 소비자들로 하여금 ‘문군’ 하면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그런 문군만의 특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특성은 디자인의 실루엣이 될 수도 있고 색깔이나 문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군은 그것을 문양으로 정한 것이죠. 사람들이 어떤 옷을 골라 입을 때 그 옷에는 그 사람의 정신과 철학, 이미지 등이 전부 담긴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몸을 보호하기 위한 보호의 기능으로 옷을 입는 시대가 아닌 것이죠. 그렇다면 문군에는 어떤 이미지와 철학을 담을 것인가, 세계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문군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이 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바로 이러한 문군의 심볼이 탄생되게 된 것이죠”
흡사 몸에 새기는 문신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문군의 심볼에서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동시에 풍겨난다. 서양 사람들은 문군의 심볼을 통해 동양을 느낀다고 하고, 동양 사람들은 서양을 느낀다고 한단다. 또 한편으로는 고대 해와 달을 섬기던 샤머니즘적 색채가 묻어나기도 한다.
“문양에 대한 아이디어는 처음 구석기, 신석기 시대에 해와 달과 별 등을 점이나 선, 면 등으로 표현한 문양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찰이나 전통 건축물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샤머니즘 현상들에 표현된 문양들을 참고했습니다. 이 문양들에서 오는 느낌과 디자인 요소들을 응용하고 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본 듯한 친숙함과 또 조금은 낯선, 동양과 서양을 한꺼번에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문양의 이런 성격이 결국 세계시장에서 이 심볼만 보면 ‘문군’을 떠올릴 수 있는 브랜드로 진출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저력을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패션은 자신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패션에 대한 이런 생각으로 그는 문군의 옷을 입었을 때 그 어떤 옷을 입었을 때보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디자인을 하고, 철학을 담는다.

늦깎이 패션 디자이너에서 패션 디렉터로
“1999년 문군을 런칭한 이후 패션벤처로서 지향해야 할 방향과 접근방법에 대해 수없이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참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처음에는 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돈도 많이 벌었고, 그만큼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후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면서 사업에 대한 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곤두박질 치는 경험도 했습니다. 이런 과정 중에 참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이제 문군이 세계적인 패션 디렉터로 나갈 수 있는 가장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37세의 패션 디자이너 문군.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비하면 정말 늦깎이 디자이너로 패션계에 입문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손꼽히는 유명 광고대행사의 PD로 입사했다. 광고대행사라는 성격상 조금은 창의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열정을 표현하기에 ‘직장’은 그에게 좁은 물이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유명 패션 회사들의 광고 기획을 맡으면서 그는 패션산업의 길로 완전히 방향을 틀게 됐다.
“남들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경쟁력이 무엇인지,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가 뒤늦게 내가 중학교 때부터 남들보다 유독 멋내는 것과 옷에 관심이 많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맡게 된 광고 업무는 패션산업을 좀 더 면밀히 관찰하고 향후 내가 갈 길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문군은 자신만의 ‘옷가게’를 열기로 결심하게 됐고, 1997년 홍대에 작은 매장을 오픈한 것을 시작으로 동대문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약 1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서 소매업에서부터 도매, 프랜차이즈 운영을 다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생산, 판매, 유통, 마케팅, 세무, 관리 등 회사를 경영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해 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이런 경험 속에서 무엇보다 관리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이 경영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관리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사람 관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경험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죠”
관리의 핵심은 ‘관심’.
‘관심’이 없는 관리는 감시가 된다
현재 중국에서 함께 사업을 꾸려가고 있는 핵심 디자이너들은 모두 문군이 한국에서 데려간 디자이너들이다. 문군이 대학 교수로 강의 하던 시절, 사제지간으로 연을 맺은 그들은 이제 누구보다 문군과 호흡이 척척 맞는 끈끈한 동료가 됐다.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타국에서 브랜드 문군을 성장시킨 핵심 멤버들인 것. 또 중국 사업의 특성상 한국인과 조선족, 한족 등으로 구성된 조직이 되다 보니 그만큼 사람관리는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 요소가 됐다.
“저는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늘 스펀지가 돼서 나를 완전히 빨아들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또 저는 직원들의 아주 섬세한 감정적인 부분들까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관리의 핵심, 그것은 바로 ‘관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문군의 경영원칙, 관리 능력의 가장 큰 핵심 2가지는 바로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다. 특히 직원들에 대한 그의 관심은 ‘스토커’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직원들 한 명, 한 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상담을 자주 합니다. 직원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관심을 갖습니다. 관심이 없는 것에 대해 관리하려고 하면 그것은 자칫 감시와 체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가 다시 생기지 않기 위해서는 상담을 통해 정확한 이유를 찾고, 어려움에 대한 근본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노력합니다. 혹시 직원이 어려운 상황 중에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 잘못 전달돼 실수가 일어난 것은 아닌지 말이죠”
이렇듯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은 문군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 중 하나다. 그래서 직원들 서로 간에 정확한 의사가 전달돼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로 수시로 도입하고 시도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중국 패션계에 진출한 지 6년 차. 문군 진출 초기 2~3년은 중국에 대한 이해와 브랜드 인지도 확대 단계로서 성공적으로 중국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고, 다음 2년 정도의 시간은 중국에 맞는 시스템을 만드는 기간으로 삼았다. 그리고 지난 2006년부터는 성장의 기반을 닦으며 한국과 중국의 디자이너들을 보강하며 온라인 사업영역으로의 확대를 꾀하고 있다.
“패션 디자인과 브랜드 런칭, 소매·도매·프랜차이즈 등을 거친 비즈니스 경험은 저를 패션디렉터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성공사례가 극히 드뭅니다. 디자이너들의 비즈니스를 서포터할 수 있는 회사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디자인은 세계적으로 뒤떨어지지 않지만 이런 비즈니스 서포터 회사들이 없기 때문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할 기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패션 디텍터로서 문군을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성공 모델로 만들고 한국의 디자이너들의 비즈니스를 디렉팅하고 키워내는 역할을 해 나갈 것입니다”
최근 한국의 패션산업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그는 이 흐름을 따라 문군을 온라인 패션 시장의 최고 브랜드로 런칭해 나갈 계획에 착수했다. 그리고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한국에게 세계 패션의 중심이 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시아의 이태리, 한국. 문군이 꿈꾸는 한국 패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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