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진(주)놀부 사장(53). 18년전 5평의 골목집 작은 식당 주인 아줌마였던 그녀가 오늘날 전국에 530개의 가맹점을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 외식프랜차이즈기업 CEO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다. 누구나 자기의 이야기를 쓰면 책 한권감이 안되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21세기판 코리안
신데렐라이야기 그 자체다. 다만 왕자의 간택이란 우연 때문이 아니라 집념과 의지력의 결과란 점에서 다를 뿐이다. 김사장이 지금껏 신주단지처럼 귀하게 간직하는 것은 그 어려웠던 시절 입었던 식당 유니폼과 매출 장부이다. 세월의 때로 찌들고 나달나달해져 걸레보다도 더 해졌지만 그녀에겐 가장 귀한 보물단지 1호다. 그 유니폼과 장부에 서린 노력과 눈물이 없었다면 결코 오늘이 존재할 수 없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극적
허스토리를 알기에 기자는 어느 정도 감동받을 준비를 하고 나섰던 셈이다. 인터뷰 도중 김사장의 고운 손이 유독 눈에 튄(?) 것도 그 선입관 때문이리라. 물한방울 묻히지 않은 듯 보드라운 손에 정성껏 메니큐어칠을 한 그녀의 기다란 손톱을 보며 딴지를 걸어보았다.
“이제 CEO시지만, 그래도 현장을 감독하시려면 그같은 손은 어울리지 않는 것 아닙니까?”
그녀의 대답이 다소곳이 돌아왔다.
“사실 그동안 제 손이 너무 고생을 많이 했거든요. 고무장갑을 끼고 일하면 손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빠릿빠릿 일할 수 없기 때문에 저는 늘 식당에서 맨손으로 일했지요. 설거지하고, 향미가 강한 음식들 버무리느라 물일에서 떠나지 않다보니 손이 퉁퉁 불고 쓰라리고… 이제 그 손에 호사좀 시키는 것으로 보상해주고 싶어 일부러라도 정성껏 손질해주는 것이랍니다.”
누가 그녀의 고운 손에 감히 시비를 걸 것인가.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힘으로 성공의 역사를 만들어온 그녀가 스스로에게 그 정도 포상하는 것에 대해 말이다.
때론 여장부답게 터프하기도 하는 한편, 소녀의 순수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김사장과의 인터뷰는 비유하자면 묵은 김치의 깊이있는 맛이었다.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
“성공DNA가 선천적인 것인지, 후천적인 것인지 그것은 나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저는 아무리 어려운 와중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농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뿌린 만큼 수확한다는 것에 대해 신앙 이상의 절대 믿음이 있습니다. 농사일이라는게 대충 해서는 안되고, 거짓말이 통하지 않거든요. 말하자면 노력의 존엄성을 자연스레 체득했다고나 할까요.”
초등학교 졸업장을 끝으로 가족의 생계를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했던 소녀가장 김순진은 시장에 나가 야채장사를 해야 했다. 그렇게 푼푼이 모은 돈 200원으로 반코트를 사 고향인 충남 논산에서 상경했던게 16살. 서울은 바라는대로 이뤄지는 꿈의 도시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서울은 결코 생각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옷장사 음식장사를 하다 실패를 한게 수십 차례. 실패를 거듭하며 어느덧 서른고개를 넘었지만 그를 오로지 버텨준 것은 “다시 도전하면 반드시 잘 할 수 있다”는 집념이었다. 각종 메뉴를 시도하고, 좌절하고 마침내 발견한게 오늘날 (주)놀부의 대표음식이 된 보쌈요리였다. 89년 본격적 가맹사업을 시작하며 사업은 일취월장, 번성하기 시작했고 그녀의 꿈은 개화하기 시작했다.
“삶을 살면서 누군들 어려운 순간에 부딪치지 않겠습니까. 가난은 절대로 대물림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애를 남에게 맡기고 24시간 식당에서 종종 거릴 때 그 애타는 마음은 이루 말로 표현 못하지요. CEO가 된 지금도 결단의 순간에 부딪치게 될 때 그 어려운 시절 못지 않게 외롭고 힘들지요. 만일 어렵다고 그때마다 막차만 선택한다면 한강에 열두번도 더 갔을 것입니다. 그럴 때 저는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으며 ‘내일 가도 되는데 왜 미리 가나. 한강은 마지막 선택으로 보류하고 오늘 할 일에 노력을 기울이자’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려운 문제는 대부분 풀립니다.”
초등학교 졸업장이 전부였던 김사장은 마흔넘어 공부를 시작,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하고 현재는 박사과정중에 있다.
“솔직히 책을 보면 기억하는 놈보다 도망가는 놈이 더 많았어요.(하하) 공부도 때가 있는 법인데… 기초가 없는데다 마흔이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려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몇번을 외워도 깜박깜박하고. 눈뜨고 돌아다니는 곳은 화장실이든 운동기구든 어디고 공부거리를 붙여놓고 외우기를 반복했지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라기보다, 스스로 갈증에서 시작한 공부이기에 한층 잘해야겠다는 스스로에 대한 부담감이 컸습니다.”
김사장은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극치를 시험, 삶을 변화시키는 것 아니겠냐”며 “배운 것 없고 기댈 것없이 맨손으로 시작한 자신이 사업과 학업의 성취를 이뤄가는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것은 ‘일단 시작한 것은 무엇이든 끝을 본다는 집념’이라고 말한다.
“오장육부외에 심술보를 따로 달고 다닐 정도로 심술의 대명사인 놀부를 브랜드로 택한 것도 이같은 끈질긴 정신을 배우자는 생각에서지요. 놀부가 없었다면 과연 흥부는 자립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놀부가 흥부에게서
화초장을 빼앗아가는 대목을 잘 보세요. 하인도 뿌리치고 손수화초장을 지고 가지 않습니까. 박을 타는 모습은 또 어떻습니까. 거듭되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13개의 박을 모두 타지 않나요. 저는 흥부의 선한 마음은 가지되 그런 놀부의 적극성을 가져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결같은 사람이 되라
김사장의 핸드폰번호는 10년전 번호 그대로다. 김사장의 핸드폰은 늘 켜져있고, 어떤 낯선 번호가 떠도 공손히 회신을 해주는게 기본원칙이다. 현대생활에서 핸드폰이 연락을 주고 받는 기능을 넘어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 비행기를 타고 있는 중 아니면 늘 켜놓고, 최대한 직접 받는다. 거의 비상체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아무리 맘에 드는 핸드백이 있어도 핸드폰을 꽂을 수 있는 주머니가 따로 없으면 안살 정도에요. 저에게 오는 연락을 정성스레 받는 것은 기본매너라고 생각하니까요. 언제라도 연락을 하면 정겹게 받아줄 수 있다는 생각을 상대방이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뢰의 첫걸음 쌓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동중 통화를 하며 정겨운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것도 그녀나름의 인맥관리 노하우다.
“저는 대인관계에서 혹하고 한번에 가까워지는 편은 아니에요. 또 자수성가형으로 늘 진취적으로 내 삶을 개척해오다 보니 아무래도 눈빛도 강하고…남들이 좀 접근하기 어려워 하는 눈치더군요. 저는 사근사근 친목을 다지기보다는 다소 무심한 편에 가까워요. 하지만 애경사는 확실히 챙기지요. 자주 연락을 하지는 않지만 늘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결정적 순간에 확인케 한다고나 할까요.”
그는 여기에서도 농사의 원리를 예로 들었다. 사람관계에 있어서 너무 손을 타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늘 관심을 가지고 관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즉 명함콜렉트를 하듯 온갖 사람과의 친분을 과시하기보다는 하나라도 텃밭을 제대로 만들어 내 사람으로 관리하는게 중요하다는 것.
“지금 아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새로운 인연도 싹틀 수 있는 것같습니다. 대인관계는 원을 그리는 무희의 행동과 같다고 생각해요. 중심을 분명히 하고 사이클을 크게 만듦으로써 동심원이 커지는 것이지, 여기저기 작은 원이 중구난방 생기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늘 한결같음 외에 강조하는 것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신을 낮출 줄 알 때 진정 상대방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게 그간의 사회경험에서 얻은 철학이다. 지리한 의전절차 대신에 음악회로 행사를 대체하고, 회사 신년하례식등 각종 행사때 앞좌석이나 상석을 사양하고, 뒷자리에 일부러 앉는 것도 그같은 사고의 연장선이다.
“자기 자신을 높이느라 남을 불편하게 만들어서는 결코 진정한 리더가 될 수 없지요. 회사 행사 프리젠테이션 때 사장인 제가 맨 앞자리에 버티고 앉아보세요. 발표자가 얼마나 떨리겠습니까. 뒷자리에 앉으면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도 있어서 일석이조이지요.”
김사장은 “가끔 (주)놀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연락을 많이 받는다”며 “준비한 사람만이 교훈과 모범케이스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 김순진 사장 프로필
1952년생. 외식 프랜차이즈 (주)놀부 대표. 1996년 5월 고입검정고시 합격, 8월
대입검정고시 합격, 1999년
서울보건대학 전통조리과 졸업,2001 관광경영학과 졸업, 2003년 현 경원대학교 대학원 관광경영학과 박사과정중, 2004년 3월 순천향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학위. 2004년 12월, 2004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한국언론인 협회) 2005년 12월, 평생교육대상 개인학습부문 대상 수상(
한국교육개발원).
김성회기자/sain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