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다독이 정답일까?
많은 것을 바꾸고 싶은 사람이라면 많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큰 성공을 하고 싶다면 많은 도전을 해야 한다. 독서를 통해 거대한 사고의 바다를 경험하고 싶다면,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결국 양이 질을 낳는다.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아주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으로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소크라테스
필자가 강조한 것은 독서량이 일정한 임계점을 돌파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을 경험한 사람과 평생 99도씨까지만 물을 끓여서 물이 끓는 것을 한 번도 경험하지 못 한 사람의 차이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99도와 100도는 겨우 1도 차이이다. 하지만 이 1도 차이가 액체와 기체라는 차원을 뛰어넘는 엄청난 역할을 한다. 다독을 할 때, 단 한 권의 책이 이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읽었던 엄청난 양의 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단 한 권의 책을 읽고서 인생이 달라졌다고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것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 한 권의 책만 읽은 것은 절대 아니다. 그 책을 읽기 전에 수 백 권 수 천 권의 책과 수 만 가지의 사상과 생각을 경험했을 것이고, 수 십 년 이상의 삶을 경험했을 것이다.
아픔과 시련도 경험했을 것이고, 실연도 경험했을 것이고, 쓰디 쓴 좌절과 고통도 만나봤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다 경험하고, 그래서 그 어마어마한 것들이 내면에 축적이 된 바로 그 시점에 읽는 단 한 권의 책이
당신을 바꾸어 놓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경험은 너무나 빈약할 수밖에 없다. 하루 종일 공부하거나 일을 하기 때문이다.
수 천 년을 살아낸 경험을 단번에 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독서 뿐이다.
그래서 의식의 강력한 혁명과 인생 역전은 독서를 통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다독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은 정말 불쌍한 사람이다.
많은 것을 바꾸고 싶다면 많은 것을 받아들여라
사르트르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도스토옙스키
이 말에 필자는 100% 공감한다.
아니 이 말을 삶에 그대로 적용시켰고 오롯이 경험을 한 사람이 바로 필자가 아니고 누구일까?
내가 읽은 책이 나를 변화시키고 성장시켰다. 그리고 내가 쓴 책들이 나를 세상에 알렸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내가 읽은 책과 내가 쓴 글이 나의 존재를 결정 지었던 것이다.
지금은 지식 폭발의 시대다.
쉽게 말해서 지난 100년 동안 탄생된 지식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탄생된 지식이 몇 배나 더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는 다독이 정답인 것이다.
많은 유명인들이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의 분야에 고수이지, 독서에 고수이거나 대가는 아니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독서에 대한 배움과 문의는 독서의 대가들에게 물어봐야 한다.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다산 선생은 큰아들 학연에게 다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폐족일수록 좋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옷소매가 길어야
춤을 잘 추고 돈이 많아야 장사를 잘하듯
머릿속에 5000권 이상이 들어 있어야 세상을 제대로 뚫어보고 지혜롭게 판단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책을 저술한 인물로 유명한 혜강 최한기 선생은 자신의 집 대문과 마당과 서재에 선을 그어 놓고, 책을 1000권 읽은 사람과 5000권 읽은 사람과 10000권 읽은 사람이 각각 들어올 수 있는 경계를 정해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 단 한 권의 책밖에는 읽은 적이 없는 사람을 경계하라’
벤저민 디즈레일리
에디슨, 모택동, 나폴레옹, 워런 버핏, 교보문고 신용호 회장, 손정의, 김대중 전 대통령,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종대왕, 안중근 의사, 오프라 윈프리, 정주영 회장 등도 모두 엄청난 다독가이다.
옛 말에도 다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들이 적지 않다.
하물며 지식 폭발의 시대에는 더 더욱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의 여행을 떠나라(독파만권 행만리로)’
결론은 많은 책을 안 읽은 사람보다는 많은 책을 제대로 읽고 자신의 사고와 의식이 확장된 사람이 인생을 100배 정도 혹은 1000배 정도 더 잘 살아 낼 수 있다.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1000권의 책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내다보는 세상과
10000권의 책을 독파한 사람이 내다보는 세상은 분명히 다르다.
이것은 등산하는 것과 비유하는 것이 가장 명쾌할 것 같다.
중간 정도의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보는 것과 가장 높은 산에 올라가서 세상을 보는 것은 분명 다르다.
독서를 제대로 한다는 것은 책에 담겨 있는 지식과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독서를 하면 절대 의식이나 사고력이 향상되지 못 하고, 세상을 다르게 내다 볼 수 없다.
지식과 정보를 넘어 새로운 사고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독서이기 때문이다.
[출처] [독서법칼럼] 왜 다독이 정답일까?|작성자 삼성맨이 베셀작가로
왜 다독이 정답일까?
2021. 8. 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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